그러나 룸 셀주크 국가가 소아시아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. 룸 셀주크 왕국은 서쪽에서는 비잔티움과 싸워야했고, 동쪽에서는 소아시아 중부와 서부를 장악한 다니쉬멘드조와 싸워야 했다. 클르츠 아르슬란 1세의 치세(재위: 1092년 ~ 1107년)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. 그는 비잔티움, 다니쉬멘드, 십자군과 차례로 싸웠다. 결국 1096년에 십자군에 패배한 클르츠 아르슬란은 니케아를 포기하고 동쪽으로 후퇴했다. 1106년에 클르츠 아르슬란은 다니쉬멘드조에게서 말라트야를 빼앗고 그 이듬해에는 모술을 점령하였으나, 결국 에미르 차불에게 패배하고 하부르 강에서 익사하는 최후를 맞이했다. 클르츠 아르슬란의 아들 메수드 1세(재위: 1116년 ~ 1156년은 십자군에게서 이코니온을 빼앗고 그곳에 수도를 세웠다. 그의 후계자 클르츠 아르슬란 2세(재위: 1156년 ~ 1192년) 역시 십자군에 대항하였고, 1176년에는 비잔틴 제국에게는 미리오케팔론 전투를 통해 참패를 안겨줬다. 이 전투를 통해 튀르크인들은 영원히 소아시아에 정착할 수 있었다. 그러나 동시에 이 전투의 승리는 룸 셀주크 왕가의 오랜 꿈인 이란으로의 귀환이 끝났음을 알리는 바이기도 했다. 이 시기 중요한 또 다른 사건은 룸 셀주크 왕국이 1178년에 다니쉬멘드 국가를 합병한 일이다. 그리하여 소아시아의 약 3분의 2 가량이 룸 셀주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. 클르츠 아르슬란 2세는 죽기 전에 옛 튀르크 전통에 따라 왕국을 분할하여 아들들에게 주었다. 제3차 십자군이 소아시아에 출연한 1189년은 이로 인해 룸 셀주크 왕국 전체가 내분으로 쌓여있던 시기였다.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룸 셀주크 왕국은 영토를 지켜내는데 성공했다. 결국 이젯딘 케이카부스 1세(재위: 1210년 ~ 1220년)은 다른 형제들을 제압하고 룸 셀주크의 왕좌에 올랐다.[7]
미리오케팔론 전투는 언제 끝나나요?
Ground Truth Answers: 1176년1176117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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